─ 우연한 여행자

여행의 가장자리의 시간

  Dec. 13, 2017

인도에 온 첫날, 나는 스스로 물었다.

‘나는 왜 여기 온 것일까? 과연, 살아서 집으로 갈 수 있을까?

 

비행기가 뉴델리 공항에 도착한 것은 밤 11시쯤이었다. 급하게 가이드북, 론리플래닛(Lonely Planet)을 꺼냈다. ‘lonely’라는 글자가 도드라졌다. 그렇다. 나는 혼자였다. 그리고 이곳은 인도다. 

공항 밖을 나서자 택시 기사들이 득달같이 몰려들었다. 먹이를 찾는 하이에나처럼 눈이 반들거렸다. 닳고 닳은 그들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었다. 다행히 비행기에서 만난 스님이 도움을 주셨다. 인도 거주 20년 차의 스님은 유창한 힌디어로 택시기사들과 흥정을 했다. 그렇게 스님은 비행기에서 내려 혼자 서성이고 있던 6명의 젊은이에게 자비를 베푸셨다. 택시 2대가 섭외됐다. 목적지는 여행자들의 성지인 빠하르간지였다. 스님이 탄 첫 번째 택시에 4명이 타고, 나는 두 번째 택시에 탔다. 22살의 남학생 1명과 나와 동갑인 23살의 여자아이 1명. 총 셋이었다. 스님은 자신과 동행하지 않는 우리를 걱정하며, 몇 번이나 택시 기사에게 다짐을 받았다. 힌디어는 몰랐지만, 택시기사가 철썩 같이 약속한다는 것은 알 수 있었다. 그때까지만 해도 앞으로 일어날 일에 대해 짐작조차 못했다. 

 

인도 거리를 택시가 내 달렸다. 가로수처럼 야자나무가 서 있었다. 차 안으로 들어오는 낯설고 이국적인 바람에, 마음마저 풍선처럼 부풀어 올랐다. 한껏 들뜬 우리에게 택시기사는 ‘인도는 처음이지?’라고 물었다. 지나가던 코끼리를 보며 탄성을 지르던 우리는 발랄하게 ‘YES!!!’라고 외쳤다. 

10분이나 갔을까? 택시기사는 갑자기 기름이 없다며 주유소에 들어갔다. 그러나 정작 주유는 하지 않았다. 대신 택시에서 내려, 한 무리의 인도인들과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 그들은 우리를 힐끗힐끗 쳐다보며 웃음을 터뜨렸다. 머릿속이 인터넷에서 봤던 각종 사기 사례들로 복잡해졌다. 불안했지만 별다른 방법이 없었다. 영겁 같은 10분이 흘렀고, 택시는 다시 움직였다. 그러나 택시가 향한 곳은 우리가 애초 가고자 했던 목적지가 아니었다. 그는 자신이 커미션을 받는 허름한 호텔에 우리를 데려갔다. 처음에는 당황스러웠고 나중에는 두려웠다. 우리는 택시기사에서 제발 우리를 최초 목적지(빠하르간지)로 데려다 달라고 거의 애원하듯 말했다. 그러나 그는 공항에서 본 하이에나의 눈빛으로 다시 돌아가 있었다. “지금은 너무 늦어 빠하르간지로 갈 수 없다. 너희는 여기서 묵어야 한다. 만약 여기서 호텔에 묵지 않고 밤길을 돌아다니면 너희는 칼 맞아 죽을 수도 있다.” 손으로 칼을 찌르는 시늉을 하던 그는 내팽개치듯 우리의 짐을 끌어내렸다.

 

택시기사는 오늘 사냥의 전리품인 우리를 호텔 앞에 내려놓고는 사라져 버렸다. 프런트에 서서 보니 호텔(이라고 부를 수 있다면)은 쓰러질 듯 허름했고, 가격은 터무니없이 비쌌다. 호텔 주인은 도도한 얼굴로 우리를 내려다보았다. 화가 치밀어 올랐다. 우리는 숙박비 협상을 거부하고 거리로 무작정 나왔다. ‘드르륵~’ 무거운 트렁크 굴러가는 소리가 짙은 어둠을 갈랐다. 분노가 두려움을 압도했다. 비싸서가 아니었다. 더러워서도 아니었다. 단, 1루피라도 그 사기꾼들에게 주기 싫었다. 만난 지 30분 만에 생사를 함께하게 된 우리는 그렇게 연대의 힘을 발휘했다. 길 건너편 호텔도 허름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가격은 반값이었다. 물론 그 가격도 게스트 하우스의 가격에 10배에 이르는 비정상적인 가격이었다. 그러나 우리는 (칼 안 맞고) 다른 호텔에 왔다는 거로 서로를 위로했다. 그렇게 인도의 첫날밤이 지나가고 있었다. 욕실로 들어가서 보니, 수도꼭지에서 내 마음 같은 녹물이 줄줄 흘러내렸다.

 

* 인도의 첫날 밤. 우여곡절 끝에 숙소로 들어온 우리는... 그래도 웃고 있다. (ⓒ 사영준)


 호된 통과의례를 치러서일까? 그 뒤로는 아주 소소한(?) 사기를 제외하고는 크게 당하지 않았다. 대신 인도의 매력에 조금씩 눈뜨기 시작했다. 사실 나는 인도 맞춤형 여행자인 양 최적의 적응을 했다. 나는 인도에서 그 흔하다는 배탈 한번 나지 않았다. 아침에 눈을 뜨면, 달콤하고 독특한 향이 매력인 인도 차 ‘짜이’부터 마셔야 속이 풀렸다. 숟가락 대신 손으로 카레를 먹었다. 정작 인도인들은 숟가락을 쓰는데도, 나는 손끝에서부터 따뜻한 맛이 전해오던 카레의 맛이 너무 좋았다. 어두컴컴한 장거리 버스 속에서도 그들이 두렵지 않았다. 오히려 아이처럼 손수건을 맨 인도인의 미소에서 선의를 느꼈다. 무엇보다 내게 인도는 ‘경이로움’, 그 자체였다. 끝없이 펼쳐지던 초원, 쏟아지는 별을 몸으로 느꼈던 사막 트래킹, 압도적이었던 타지마할 그리고 성과 속의 조화로움 속에 슬프게 흐르던 갠지스강···. 나는 인도의 모든 면에 매료되었다.

 

* 바라나시. 이곳에서 보낸 시간은 쉽게 말로 설명이 되지 않는다. 그곳에서 보낸 일상을 짧게 설명하자면, 마치 토끼를 따라 ‘이상한 나라’로 들어간 앨리스처럼, ‘찰나의 시간이 길어졌다가, 긴 시간이 짧아지는’ 이상한 곳이었다. (ⓒ 사영준)

 

그러나 인도 여행이 2주가 넘어가자. 지치기 시작했다. 오다가다 좋은 사람들을 많이 만나서 함께 여행했지만, 기본은 혼자였다. 특히 ‘여자’ ‘혼자’ ‘인도’ 여행은 늘 긴장의 연속이었다. 더구나 나는 계획 따윈 세우지 않는 우연한(이라고 쓰고 ‘게으른’이라고 읽는다) 여행자다. 사전의 큰 계획 따위는 없었다. 머물다 좋으면, 더 머물고 가고 싶으면 떠났다. 그러다 보니 늘 선택지가 많았다. 매일 밤 고민의 연속이었다. 그렇게 조금씩 지쳐가는 나를 위해, 나 스스로 마련해 둔 ‘완충장치’가 있었다. 그것은 국제워크캠프의 봉사활동이었다. 워크캠프란 전 세계 청년들이 모여 2주~ 1달 정도 함께 생활하며 세계 곳곳에서 자원봉사 하는 프로그램이었다. 나는 총 2달간의 인도 여행 중 2주간 워크캠프를 신청했다. 매일매일 짐을 싸고, 떠나고, 숙소를 구해야 했던 날들 속, 쉼표였다. 

그러나 워크캠프 시작 3일 전, 최종 메일을 확인하던 중, 청천벽력 같은 소식을 접했다. 워크캠프 장소였던 보드가야에서 한국인이 사살되었고, 안정성 문제 때문에 캠프가 취소된 것이었다. 그러나 나를 포함해, 이미 들어와 있던 한국인이 여럿이었다. 그래서 워크캠프측은 우리만을 위한 워크캠프 장소를 다시 만들어줬다. 그곳은 보드가야에서 기차로 거의 2박 3일은 달려야 하는 벵갈루루의 외곽이었다. 그곳에서 하는 일은 지극히 단순했다. 인근 동네에 가서 마을 사람들을 위한 작은 다리를 만들었다. 말 그대로 ‘삽질’이었다. 일은 길지 않았다. 낮 동안만 일을 하고, 2, 3시쯤이 되면 숙소로 돌아왔다. 주말이면 인도 현지인 집에 방문 하기도 하고, 결혼식에 초대받아 가기도 했다. 여행자라면 스치고 지나갔을 현지 문화 속에 녹아들었다. 따뜻하고 포근했다. 유명한 관광지를 바쁘게 돌아다녔을 때는 느끼지 못했던 감정이었다. 순간순간이 충만해지기 시작했다.

* 숙소 앞 숲길에서 인도 전통의상 펀자비를 입고 사진을 찍었다. 이 길 끝에는 식당이 있었다. 식당의 접시는 큰 바나나잎이었다. 워크캠프에서 나는 먹는 기계(eating machine)라고 불릴 정도로 잘 먹었다. (ⓒ 은정아)

‘가장자리의 시간’ 

인도 여행을 통틀어, 지금까지도 내게 가장 강렬하게 남아있는 기억도 워크캠프를 하던 중에 일어났다. 아이러니하게도 그것은 ‘아무것도 하지 않던 시간’이었다. 아침부터 시작된 하루의 ‘삽질’은 보통 2시 전후가 되면 끝났다. 하루의 노동을 끝낸 나는 숙소로 돌아와 깨끗하게 몸을 씻었다. 자원봉사자들의 숙소는 숲속에 있는 게스트하우스였다. 젖은 머리를 하고 맨발로 숲길을 한 바퀴 돌았다. 발가락 사이로 느껴지는 서늘한 흙의 기운이 상쾌했다. 그리고서 나무 밑에 앉아 책을 읽거나 일기를 썼다. 책과 나 사이에 바람이 스며들어와 고요한 우물 같은 시간이 만들어졌다. 바람은 나뭇잎 사이로도 파고들었다. 잎과 잎이 자분자분 서로를 쓰다듬으며 소곤거렸다. 그 소리에 이끌려 눈을 들어보면, 말간 햇살이 유리구슬처럼 잎끝에 매달려 빛나고 있었다. 그 순간의 감각, 나뭇잎이 서로의 몸을 보듬던 소리, 바람의 향기, 그늘의 서늘함은 어떤 필터도 거치지 않고 나의 몸으로 스며들었다. 그것은 좁고, 복잡한 도시에서 평생을 살아왔던 내가 자연과 함께 오롯이 보낸 ‘가장자리의 시간’이었다. 바쁠 것도 신경 쓸 것도 없었다. 그렇게 나는 풍경이 되어, 그 속에서 고요히 머물렀다. 

* 벵갈루루의 번화가, 한 음반가게 앞. 벵갈루루는 최첨단 도시다. 핫팬츠나 미니스커트를 입은 그들 사이로 나는 인도전통의상을 입고 유유히 활보했다. 지금 생각하니 외국인이 한복을 입고 여행 다닌 형상이다. (ⓒ 은정아)

 

워크캠프를 끝내고 나는 다시 홀로 여행을 시작했다. 그러나 나는 달라져 있었다. 더 많이 보고나, 더 많이 돌아다니는 대신 더 오래 머무르려고 노력했다. 인도 전통의상을 입고, 머리를 땋고, 손에는 헤나를 한 나는 유명 관광지 대신 동네를 느릿느릿 돌아다녔다. 골목의 찻집에서 한나절을 보내고, 시장에 가서 작은 피리를 사서 이틀을 배웠다. 찾기보다는 머무르려고, 빨리 가기보다는 천천히 가려고, 중심보다는 가장자리에 머물려고 노력했다. 그렇게 나는 쉼표의 시간을 나의 몸에 새겼다.

 

인도로부터 15년. 여전히 나를 아우르는 ‘가장자리의 시간’

인도에서 고군분투하던 나는 어느새 30대 후반의 사회인이 되어 있다. 삶은 녹록지 않고, 고된 하루의 끝에는 한숨이 그림자처럼 나에게 척 붙어 떨어지지 않았다. 복잡한 지하철에서 짐짝처럼 실려 집으로 오면, 나는 느릿느릿 나만의 가장자리 시간을 찾아 들어간다. 조용히 향을 켜고, 15년 전 인도 여행에서 배운 감각을 다시 일깨우는 것이다. 그렇게 느릿느릿··· 깊이 숨을 들이쉬며 지금, 여기의 시간을 음미한다.


인도 여행 첫날 나는 내게 물었다. ‘나는 왜 여기 온 것일까?’ 

그리고 나는 지금, 일상을 살아가는 나에게 묻는다. ‘나는 왜 여기에 있는 것 일까?’

여행하는 것처럼, 일상을 살아갈 수 있다면 모든 것이 분명해지고, 일상은 훨씬 아름다워질 것이다. 내일이면 나는 이곳을 떠날 것이고, 다시는 못 만날 수 있는 풍경과 사람들이라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지금, 여기’에서의 삶이 훨씬 더 소중해질 것이기 때문이다. 그렇게 나에게, 하루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하루하루 쌓여 삶이 된다. 설사 오늘 하루가 조금 아팠다고 해도 괜찮다. 나는 다시 가장자리 시간에 앉아, 몸을 낮게 웅크리고 조금 천천히 나를 토닥이며, 보듬을 것이다. 그렇게 나는 오늘도 일상의 가장자리에 앉아 삶이라는 여행을 계속하고 있다.

사진 사영준/은정아, 글 은정아